조선 선비 살해사건 2
이덕일 저 | 다산초당 | 2006년 07월
조선시대의 살인사건에 대해 쓴 책으로 짐작했는데, 조선전기 성종부터 명종까지, 사림파를 둘러싼 '4대 사화'에 대해 기록한 역사서였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은것입니까.
훈구파는 '공신집단'이라는 동질성을 가진 집단인데 반해, 사림파는 고려 말 온건개혁파 신흥사대부로 시작되어 초기에는 '무리'라고 볼 수 없었다. 이들이 성종 무렵 조정에 등장하면서, 김종직에 의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묶이게 된다. 훈구 공신과 격돌한 신진 사림들은 처음에 성종의 보호를 받았으나, 성종이 재위 25년 만에 사망하면서 사림파의 시련이 시작된다. 하필 다음 왕이 '문제적 인간' 연산이다.
연산군 4년(1498), 김일손의 사초에 있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발단이 된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난다. 이 첫번째 사화는 '사초史草'가 시작점이라, 다른 세 번의 '사화士禍'와 달리 '사화史禍'로 표시한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연산군은 이미 죽은 김종직의 관을 파헤쳐 목을 베기까지 했고, 이후 광란의 횡포가 이어진다.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 비화를 알게 되면서 미쳐갔고, 1504년(연산군 10), 수백 명의 사림파와 훈구파를 처형하는 '피의 보복'을 단행한다. 갑자사화(甲子士禍)다.
연산군은 '세상사 매달려도 뜬구름만 못하다. / 생각하면 인간사 꿈속만 같구나. / 애써 좇는 공명 모두가 허망해 / 꽃 속에 파묻혀 취하는 것만 못하구나.'라는 멋들어진 시를 써놓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기생을 불러모아 엽색행각을 벌인다. 운평(기생을 고쳐부른 말)의 수가 몇 백으로 시작해 1천 3백을 넘었고, 이들이 거처할 곳이 모자라 종친의 집을 그 거처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궐에 뽑혀 올라온 운평을 '흥청'이라고 했는데, 흥청망청은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연산의 폭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난 '중종반정'은, 반정 당일에도 당사자인 진성대군(중종)이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야사는 전한다. 군사가 진성대군의 사저를 둘러싸자 대군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는 것인지, 임금으로 추대하려는 반정인지도 몰랐던 진성대군'이니, 초기에는 그저 명목상의 임금이었다. 반정 삼대장(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모두가 중종 8년에는 이미 이런 저런 이유로 사망했고, 그 다음 등장하는 사람이 사림파 조광조다. 두 번의 사화로 사림파들이 관직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광조는 사림파를 대거에 끌어들이기 위해 '과거제'가 아닌 '추천제'로 관료를 선발하려는 '현량과'를 실시한다. 사림을 통해 세력을 갖고자 한 중종도 이를 만족해했으므로, 조광조의 기세는 등등했고, 내친김에 '위훈 삭제'의 승리까지 거머쥔다.
중종이 사림의 편을 들어주긴 했지만, 이미 사림에 대해 지치고 싫증나기 시작했다는 걸 훈구파가 눈치챘고, 이들은 조광조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주씨가 왕이 된다'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꿀로 써서, 벌레가 글자만 갉아먹게 하고, 중종이 그것을 발견하면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시작된다. 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이었으니, 반역으로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웠고, 별 죄목없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를 처형한 것이다.
마지막은 명종때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다. 중종비 장경왕후 윤씨(대윤)의 세자는 인종이 되었고, 계비 문정왕후 윤씨(소윤)의 아들 경원대군은 명종이 된다. 사림의 편을 들어줄 '어진 임금' 인종은 8개월만에 죽고(야사는 문정왕후의 독살이라 전한다), 명종 즉위년에 '소윤'세력이 '대윤'세력을 밀어내면서 피바람이 분 것이다. 명종이 스무살이 되면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났고, 이때부터 사림파는 다시 세력을 잡게 된다. 그리고 퇴계 이황의 시대가 시작된다.
21세기의 세력 다툼이라고 '피'를 보지 않겠는가. 후세에 남아 있을 기록에는, 조선시대 못지 않은 암투, 혈투, 권모 술수와 배신의 이야기가 판을 칠 것이다. 뻔히 보이는 거짓과 위선인데도, 가면을 쓰고 행하는, 권력을 향한 다툼, 왜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선택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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