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비소설
20세기 우리역사
mariannne
2002. 2. 25. 14:43
20세기 우리역사 (강만길 저 | 창비)
이 책은 제목에서도 볼 수 있으며,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미래에 대한 전망이 극히 제한적인 ‘역사책’과는 조금 다른, 역사책에서는 쓸 수 없는 가정이나 추측, 그리고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된 ‘역사 강의’다.
역사적 사실은 변함이 없으나,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왕조가 사라지기도 하며, 정통성이 무너지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책’이 아닌 주관적 강의서를 펴 든 것은 강만길 교수를 믿기 때문. 교수의 캐리커처와 보기 좋은 편집으로 일단 ‘재미있는’ 역사 강의서라는 느낌을 주는 이 책은 눈에 쏙쏙 들어올 것 같지만,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펴 들어야 읽을 수 있을 것.
이 책은 한반도가 일제 강점된 이유에서부터 시작되며 총 26강의로 구성되었다. 내가 관심있게 본 부분은 18강의인 6.25전쟁에 관한 것부터 마지막 강의인 김영삼 문민정권까지. 강만길 교수는 20세기를 한마디로 말해서 불행한 세기라 한다. 역사적 정통성이 취약하여 불안한 출발을 한 이승만 독재 정권, 친일 군부세력과 미국의 합작품인 5.16 군사 쿠데타의 핵심인물인 박정희 정권, 광주민중항쟁을 피로써 탄압한 전두환, 노태우와 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인 ‘경제주권 상실’을 가져온 김영삼 정권까지. 20세기는 이렇게 막을 내리지만 이제 21세기에 희망을 거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당위성을 갖는 ‘한반도 통일’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것 중 한 가지. IMF 시대에 접어들어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정권을 그리워했지만, 강만길 교수는 이런 꿈 같은 기대에 일침을 가한다. IMF는 김영삼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가 직접적 원인이긴 하지만, 박정희 정권 아래서 조성된 정경유착, 관치금융, 재벌독점체제 등 비민주적 경제체제가 그 근본적 원인이며,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은 개인의 역량으로 인한 공로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양성된 우리의 민족적 저력이라고.
책 속 구절 :
근대 이후의 역사는 어느 개인이나 한 집단의 의지 또는 작용에 의해 전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박정희정권 시기 동안 경제건설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해도, 그것이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집권세력만의 공로나 업적이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경제발전을 역사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중세시대까지 동양문화권 안에서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습니다만, 근대사회로 오는 과정에서 한때의 침체가 원인이 되어 식민지배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3.1운동 등 민족해받운동 과정을 통해서 그 민족적 저력은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해방과 민족상잔을 겪으면서 이 저력은 더욱 굳세졌고, 1960년대에는 4.19'운동'을 폭발시켜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만큼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출된 민족적 저력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구일본군의 일부인 괴뢰만군 출신 중심으로 구성된 박정희정권의 강압에 의해 오도되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의 군벌과 재벌이 야합하여 만주를 침략하던 역사를 현장에서 보고 배운 그들이, 그 전철을 밟으면서 군부와 연계된 재벌중심 경제체제를 성립시키는 방향으로 민족적 저력을 잘못 이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