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비소설

무라카미 라디오

mariannne 2001. 10. 14. 12:12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저 | 까치글방)

일요일 오전,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서 한가로이 앉아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이 책을 읽는 느낌이란... 정말 좋았다!! 일본 여성지 "앙앙"에(우리나라에도 들어온 잡지다) 기고했던 에세이를 모아 만든 <무라카미 라디오>는 이전의 하루키 에세이집들의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은 언제나 즐겁고 새로운 느낌을 주니 이번것도 반가울 수 밖에. 밑의 다른 분이 독자리뷰에 쓴 것처럼 다른 에세이집과 중복된 내용은 없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대한 차분하고 겸손한 시선. 하루키를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그의 소설세계는 의외로 깊고 풍부하지만 에세이는 만화보다 더 재미있다. 이 책은 아주 얇고 가벼워서 오며가며 읽기에 딱 좋지만 너무 빨리 읽어버릴 수 있다는 게 아쉽다. 가격도 비싼 편이라 생각한다. 이런 책은 종이질이나 책날개 부분에서 비용을 포기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책 속 구절 :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식품인 카키피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하나는 '타인이 개입하면 감씨와 땅콩이 줄어드는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내는 땅콩을 좋아해서 나와 같이 먹으면 카키피 속의 땅콩만 일방적으로 먹어 버려, 결국 감씨만 남게 된다. 내가 투덜거리면, '당신은 어차피 콩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감씨가 많은 쪽이 더 좋죠?'라고 한다. 확실히 나는 땅콩보다는 감씨 쪽을 더 좋아한다. 그것을 기꺼이 인정한다(나는 대체로 냄새를 맡아보고 단 것보다 매운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카키피를 먹을 때, 나는 자신의 내재된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며 감씨와 땅콩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다루도록 애쓰고 있다. 자신의 속에 반강제적으로 '카키피 배분 시스템'을 확립하여 그 특별한 시스템 속에서 삐뚤어지고 보잘것없는 개인적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단 것과 매운 것이 있어서 양자는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세계관을 새삼 확인한다. 그러나 그런 까다로운 정신 작업을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도 솔직히 말해서 몹시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