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스토너
존 윌리엄스 저/김승욱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 원서 : Stoner
시대도, 장소도, 소설의 스케일도, 주인공의 성격도, 그리고 물론 줄거리도 다르지만, 이 책을 읽으며 펄벅의 "대지"가 생각났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과도 닮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냥 "스토너"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결국은 감동적인 이야기다.
익숙한 주인공이라고 느껴지는 건, 스토너의 성격이 평범하고 무던해서 그럴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고, 그에게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해 농사를 더 잘 지을 생각을 했지만, 운명처럼 문학에 빠져들었고, 영문과 조교수가 된다. 대학에서 만난 친한 친구 둘 중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고, 하나는 평생을 같이 하지만, 그리 대단한 우정을 나누지는 못한다. 첫 눈에 반한 여자에게 청혼을 했고, 홀린듯이 결혼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결혼이 실패작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이혼은 하지 않는다. 중년이 되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연애를 했고, 종신교수로 재직중인 대학에 그 소문이 파다해지자, 난처해진 여자가 그를 떠나는 것으로 연애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이 된다. 한 괴팍한 동료교수 때문에 학교 생활이 고달파졌고, 모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묵묵히 그것을 버텨낸다. 아내가 애지중지 키운 딸 그레이스는 스물 몇 살 나이에 임신을 해 집을 떠났고, 알코올 중독자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환갑이 넘어 은퇴 무렵에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그는 그렇게 삶을 마무리한다.
사람들의 인생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닮아있고, 그 부분, 부분의 조합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지인과의 관계와 학교, 일, 종교, 사회에서의 생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일련의 과정 속에 누구나 아주 익숙한 순간을 체험하기도 하고, 누구나 자신만 겪는 특별한 고통과 쾌락의 비밀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가고, 저물어가는 것이다.
정말 인상적인 소설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책 속 구절: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동안 전부다 한층 더 힘들게 새로운 한계까지 자신을 혹사했다. (p.107)
그는 어머니를 아버지와 나란히 묻어주었다. 예배가 끝나고 몇 명 되지 않는 조문객들도 돌아간 뒤, 그는 11월의 차가운 바람 속에 혼자 서서 두 개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아직 열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봉분 위에 가느다란 솜털 같은 잔디가 덮여 있었다. 그는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이 황량하고, 나무 하나 없는 작은 땅으로 시선을 돌려 평평한 땅 너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태어난 집,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을 보낸 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해마다 땅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했다. 땅은 옛날과 다름없었다. 아니, 그때보다 조금 더 척박해지고, 소출도 조금 더 인색해진 것 같았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즐거움이 없는 노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들의 의지는 꺾이고, 머리는 멍해졌다. 이제 두 분은 평생을 바친 땅 속에 누워있었다. 땅은 앞으로 서서히 두 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습기와 부패의 기운이 두 분의 시신이 담긴 소나무 상자를 서서히 침범해서 두 분의 몸을 건드리다가, 마침내 두 분의 마지막 흔적까지 모조리 먹어치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분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을 바쳤던 이 고집스러운 땅의 무의미한 일부가 될 것이다. (p.152~153)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無)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p.251~252)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예전에는 연구실에서 은은히 빛나다가 사라져가는 풍경을 창문을 통해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캐서린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