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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by mariannne 2014. 8. 10.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지은이) | 전미연 (옮긴이) | 문학세계사 | 2002-02-15 | 원제 Me'taphysique des Tubes 


세 살 어린아이가 보는 세상 이야기다. 물론 보통의 세 살 아이는 아니다. 갓난아이 때는 울지도, 먹지도, 말하지도 않아, ‘식물인간’이라 진단받았지만, 이때도 스스로를 “시선이 없는 것만 빼면, 외형상 정상”(p15)인 아이이고, 사실 신(GOD)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특별난 아이였다. 


파이프, 파이프는 무기력 자체였다. 기후의 변화, 일몰, 일상에서 벌어지는 숱한 자질구레한 반란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의 거대한 신비들, 그 어떤 것도 파이프에게 충격을 주지 못했다. (p.13) 


파이프의 형이상학이 있다. 슬라보미르 므르체크가 파이프를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아연해질 만큼 깊이 있는 내용인지 대단히 익살맞은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파이프는 공(空)과 만(滿)의 독특한 결합이고, 속 빈 물질이며, 존재하지 않는 다발을 보호하는 존재의 막이다. […]

신은 호스처럼 유연했다. 하지만 단단하고 움직임이 없는 점으로 봐서 분명히 파이프였다. 신은 원기둥의 절대적 고요를 누리고 있었다. 그는 우주를 여과했지만 아무것도 흡수하지 않았다. (p.10) 


아이의 아버지는 벨기에 외교관이고, 아이는 일본에서 태어나 간사이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이 곁에는 아이를 신처럼 떠받드는 일본인 보모가 있다. 젊고, 유순하고, 친절한, 가난한 서민 출신 니쇼상이다. 아이는 자신을 추앙하는 니쇼상이 좋아서, ‘일본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엄마는 아이를 보통 아이처럼 대했고, 두 번째 보모인 카시마상은 백인을 싫어해 사사건건 아이를 방해했지만, 니쇼상만으로도 아이의 세 살은 행복했다. 


잘 가꾸어진 일본식 정원이 있는 집에서, 자신을 추앙하는 보모와 함께 지내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의 아이는 곧 ‘애들 무리에 섞여’ 유치원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기만 했다. 연못에 있는 잉어에게 먹이를 주다 자살을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거창하게 떠들어대는 세 살 아이, 아멜리 노통브의 자의식 과잉을 말하는 걸까? 흥미롭지만, 마음에는 들지 않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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