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의 독서일기 8
장정일 저 | 마티
장정일의 독서일기 여덟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독서일기가 18년 전(1994년)에 나왔고, 작년(2011년)에 아홉 번째 독서일기가 출간되었으니, 매년 한 권씩 독서일기 책을 내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에는 좀 못 미치지만, 그래도 2년에 한 번씩은 나오는 셈이다. 이번 여덟 번째 독서일기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늘 그렇듯이 작가가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쓴 것이고, 어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읽다가 마음에 들어 소장하고 싶으면 서점에서 구입하기도 하며, 헌책방에서 구하기도 하고, 그러다 책이 많아지면 남을 주거나 버리는 것에 대한, ‘애서가’ 장정일의 생활에 대해 쓴 것이다.
‘책’에 대한 책을 읽는다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저자의 소설이나 희곡보다 오히려 에세이나 독서일기 문체가 더 마음에 들어 열심히 읽게 된다. 당연하게도, 저자가 소개한 책 중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려고 목록을 적어놓는데, 시카고 신학교에서 해외선교 자격증을 받고 선교 임무를 받아 아마존으로 갔다가 30년 후에 무신론자가 된 다니엘 에버렛의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이 원작 소설인 “꿈의 노벨레”, 살생이 금지되어 1200년 동안이나 육식을 하지 못했다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요리유신’이라 하여 돈가스, 카레라이스, 고로케의 탄생 비화를 추적한 “돈가스의 탄생”, 그리고 이상하면서도 인간적인 경제학에 대해 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리스트에 올렸다.
책 속 구절:
뜻밖의 결말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을 ‘서프라이즈 엔딩’이라고 하는데, 상아탑의 인류학자와 언어학자에게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이 책이, 바로 그것을 준비했다. 아마존에서의 30년 생활을 마친 뒤, 지은이는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됐다. 거기엔 ‘지금-여기’라는 삶의 직접성에 충실했던 피다한 문화도 한몫 했지만, ‘보편’이나 ‘이론’은 복잡한 세계에 대한 ‘단순화’일 뿐이라는 그의 학문적 치열성이 단순화의 극치인 ‘유일신’내지 ‘기독교적 진리’와 결별하게 이끌었다. 진짜 장엄했다!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p.64)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서로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독점에 기반한 결혼생활이 얼마만큼 깨지기 쉬운 긴장과 불안 가운데 놓여 있는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아내는 남편의 ‘여성 편력’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남편은 아내의 내면을 수시로 검색한다(‘자기 나 사랑해?’와 같은 질문에서부터, ‘당신 첫사랑은 누구였어?’ 등등. 이런 불시 검문에 홀딱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초등학교 때의 남자 짝’ 얘기만 해도 잠을 못 이룬다). 이때 남성 가부장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아내의 남편에 대한 의심은 항상 ‘구체적인 물증’을 가지며, 남편의 아내에 대한 의심은 대부분 남성의 ‘자기 불안’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는 비대칭적이다. 인류가 이런 비대칭적인 부부 관계를 유사 이래 지속해 온 결과, 여성은 불륜을 행하는 남편에 대해 웬만큼 관대해졌으나(인내심이 생겼으나), 남성은 현실에서 벌어진 아내의 불륜을 감당할 내성을 배양하지 못했다. (남성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에 속박되어 여성들이 함부로 불륜을 저지르지 못할 줄 알기 때문에 여성의 ‘내면’을 조회하는 반면, 여성들은 남성들의 구체적인 불륜을 늘 목격하기 때문에 남성의 ‘내면’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대하다. 예를 들어 포르노를 보는 남자의 심리조차 ‘남성의 성적 판타지’ 정도로 가볍게 보아 넘겨줄 준비가 되어 있다.) ("꿈의 노벨레", p.136~137)
"신화는 없다"를 읽으며, 내가 유심히 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책을 읽었고, 둘은 학창 시절의 그에게 영향을 준 스승의 유무였다. 책과 스승은 한 사람의 인격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뼈대이니, 청와대의 주인이 된 사람에게 갖는 이런 궁금증은, 나만의 것일 수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책을 읽고서, 이 자서전의 주인공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도통 알아 낼 수 없다. 대학 시절 “나는 틈이 나면 어디서나 책을 읽었고 사색에 잠겼다”(63쪽)고 하고, 1964년 6•3시위 주동자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떄 다시 “전공서적 이외의 책들도 읽었고, 생각에 깊이 잠겼”(76쪽)으며, 또 타이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매일 새벽마다 “보고 싶은 책을”(105쪽) 읽었다는 데, 감질나게도 도서명은 적어 놓지 않았다. ("신화는 없다", p.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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