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
몇 년 전까지는 하일지의 소설이 나오는 대로 챙겨 읽는 것도 모자라 논문집까지 찾아 파고 들었다.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에서 생긴 일’ 등 일련의 ‘경마장 시절’ 소설들은 두 세 번씩 반복해서 읽어도 재미있었고,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일지 소설에 흥미를 잃었고, 이번에는 거의 몇 년 만에 그의 소설을 읽었다.
언젠가 누보 로망 작가 중 한 사람인 미쉘 뷔토르의 2인칭 기법을 적용시켜 한국 소설에 새로운 느낌을 불어 넣더니, 이번에는 독백이다… 그는 끊임없이 부인할 지 몰라도, 몇 명의 외국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로브그리예가 그렇고, 카프카가 그렇다. ‘진술’은 물론 그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겠지만, 공교롭게도 최근에 읽은 아멜리 노통의 한 작품과 느낌이 몹시 비슷하다. 한 남자의 독백(아멜리 노통의 소설에서는 ‘대화’였다)은, 처음에 별 특별한 내용이 없이 쉽게 읽히나, 점점 혼란을 거듭하다가, 급기야는 신선한 반전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맘껏 선사하고 있다.
‘진술’은 비교적 짧은 소설이다. 몇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내용상 단숨에 읽어내는 것이 훨씬 좋겠다. 미리 짐작하지 말고, 아무 것도 기다리지 말고… 그냥 읽는 것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J가 아주 오래 전에 ‘세계명작과, 그리고 한국 소설은 최 윤, 하일지의 것만 읽어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문에 더욱 하일지의 소설이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읽지 못했던 그의 소설 몇 권을 더 읽어야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