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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book) 어떤 양형 이유

by mariannne 2024. 2. 7.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법 > 일반인을 위한 법이야기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저 | 김영사 | 2019년 07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특히나 눈물 많고, 낯을 많이 가리며, 소심한 저자같은 판사에게는 더욱 힘든 일일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지만 다시 이 나라다. 위험을 외주화하고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이 사망하는 나라,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이 사망해도 원청업체의 이윤이 늘기만 하면 죽음도 기꺼이 용인하는 나라,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의 죽음을 용인하며 이윤만을 추구하는 연 매출 수조 원의 대기업에 가해지는 형벌이 고작 벌금 1,000만 원이 전부인 이 나라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옴에 가장 적확한 단어는 퇴근이나 귀가일 수 없다. 생환이다. 타인의 희생 위에 축조된 삶이 과연 행복할까. 위험을 외주화할 수 있다. 죽음도 하도급 줄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하청줄 수 없다. (p.97, 삶이 잇는 저녁) 

법원은 수많은 이유의 죽음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언젠가 야간이나 휴일 당직을 할 때 검찰이 신청한 각종 영장에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이 있었다. 기억이 정확치는 않으나 할머니의 유서가  첨부된 영장 신청이었던 것 같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할머니는 "무용지물 식충이로 구둘막 신세로 살기 싫어, 다감한 내 엄마 곁으로 간다"는 담담한 유서를 남겼다. 남은 자식과 손자에게 일일이 사랑을 전한 할머니는 간소하게 장례를 치를 것, 없는 아들에게 재산을 좀더 주는 것을 이해해줄 것, 대학에 입학하는 손녀에게 입학축하금을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의료보험료가 많이 나오니 사망신고를 신속히 하라고 했다. 집주인과 지인들의 연락처, 인터넷 가입처까지 꼼꼼하게 남겼다. 유서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기록 위로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 편지지 두 장짜리 유서를 읽다 법원에서 흘릴 눈물을 다 쏟아버렸다. (p.160,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판사가 쓰는 판결문은 '모든 감상은 배제하는 글'이지만 "그나마 판사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현사 판결문의 '양형量刑 이유' 부분"(p.6)이라며, 이를 공들여 쓴 판사가 법원에서 겪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따뜻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인간적인 글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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