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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바리데기

by mariannne 2009. 4. 8.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소설 줄거리에 대한 어떠한 사전 정보도 듣지 못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의 단독주택'에서 일곱번째 딸아이로 태어나 숲 속에 버림을 받았다가 하루 만에 발견된 탓에 '바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주인공. 책 표지에 고운 얼굴로 서 있는 촌스러운 그녀가 동시대 인물이라니! 청진에서 태어나 화목하게 살던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국경근처에서 도강을 할 때까지만 해도, 백두산 자락에서 겨울을 맞이할 때까지만 해도 딴 나라 얘기였다. 영국으로 밀항하는 동안 주먹밥 한 덩이에 물 한컵으로 하루를 때우면서 주위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장면은 또 어떤가. 하지만 바리는 나처럼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테러 소식도 듣고, 축포 속에서 21세기도 맞이한다.

일곱번 째 공주로 태어난 바리 공주와 이름은 같지만, 버림을 받은 후 부모를 위해 온갖 고행을 겪는 부분은 좀 다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바리는 결국 소설이 끝날때까지 부모를 만나지 못하니까.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소설을 읽는 내내 한 눈 팔기가 힘들었다. 보아하니, 초등학생이나 중, 고등학생에게도 많이 읽히는 모양. 추천할 만 하다.
 
책 속 구절 :
나는 여권을 얻게 되면 정식으로 결혼신고를 할 수 있고 노동허가증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비용 따위는 얼마가 되든 간에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여권 대금은 아무리 못 주어도 오천 파운드는 있어야 할 테지만 알리와 내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갚아나가면 될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 중에 장승이와 바리공주의 약속이 생각났다. 길값, 나무값, 물값으로 석삼년 아홉 해를 아들 낳아주고 살림 살아주어야 하는 세월.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p.223)

자기를 보고 있다고 느꼈는지 그녀가 나를 한번 돌아보았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그애의 표정이 하도 어두워 보여서 나는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어느 한적한 길에서 그녀가 내렸을 때 나는 차창 밖을 계속해서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길에 내려서서 나를 한번 더 쳐다보았다. 나는 그 순간에 샹 언니를 생각했던 것 같다. 아아, 사람의 인연은 하늘에서 미리 짜놓은 줄에 서로 연결되고 엮이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미리 짜여진 모양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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