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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by mariannne 2023. 1. 5.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

박노자 저 | 한겨레신문사

이 책의 저자 박노자는 누구인가. 소련 출신으로, 일찌기 '춘향전'(북한에서 만든 영화)을 보고 한국을 동경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조선학을 공부했고, 1991년 소련을 떠나 한국으로 유학을 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좌파 지식인이다. 그 와중에 소련이 해체되어, 이제는 '러시아'가 된 조국으로 돌아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한국고대사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한국으로 와 1995년에 한국인과 결혼, 2001년에 귀화했다. 박노자(朴露子)로 알려져 있지만, 박씨 문중과의 문제로 개명하지는 못하고, 한국인이면서도 여전히 티호노프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2000년에 노르웨이로 건너갔고, 2006년부터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한 전임교수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활동도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말로 써 출간한 책이 십 수권이고, 10년 넘게 한겨레에서 개인 블로그(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를 운영하고 있는데다가, 현재 노동당(홍세화 씨가 대표를 역임한 진보신당의 후신) 대표최고위원이기도 하다. 언제나 놀라운 사실은 1973년생이라는 것인데, 외모를 보고도 제 나이보다 훨씬 많아보여 놀라지만, 한국에 대한 지식이나 우리말과 우리글 실력 등은 보통의 한국인보다 훨씬 뛰어나 소련 출신이면서 겨우 30, 40대에 직접 책을 써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박노자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이 책은 박노자가 노르웨이로 간 지 1~2년 만에 내놓은 것이다. 북유럽의 선진성과 우리나라의 후진성을 비교하려고 내 놓은 책은 물론 아니지만 - 그 역시 서문에서 "나는 노르웨이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해서 '선진성' '모범'을 들먹이며 한국인들을 질타하고 '계몽'할 의도가 결코 없다"고 했다 - 그래도 사회민주주의 국가이자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꼽히는 노르웨이의 진보성, 개방성, 높은 사회적 의식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를 과시할 필요도, 과시해서도 안 된다는 '평등 지향'의 분위기는, 교수 월급과 버스운전사 월급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나라는 대학에서 학생은 물론 교수나 교직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예사이고,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는 걸 자랑으로 일삼는다는 근검주의자들이 대부분인 나라다. 

고정 소득을 보장받는 교수들과 학비 고사하고 생활비까지 국가로부터 특수 대출 형태로 받아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왜 값싼 '할인 식당'의 점심 비용까지 그렇듯 아끼는 것일까. 노르웨이의 전체적인 고물가 현상으로 인한 평소의 심리적 압박감도 작용하곘지만, "줄일 수 있는데도 안 줄이는 소비는 부끄러운 낭비"라는 노르웨이 사회의 투철한 관념이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본인들도 의식하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자급자족(?)'형 습관의 커다란 장점은 음식쓰레기가 거의 안 생기는 것이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샌드위치를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먹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상정일 것이다. (p.52)

하지만 박노자 같은 사람이 노르웨이를 찬양만 할 리 없다. 그는 스칸디나반도의 "3세계에 대한 이중잣대"를 꼬집는다. 노르웨이 대학에서 한 학생이 '중국의 비민주주의적, 권위주의적 태도'를 비판한 것을 두고 박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태어나, 노동법이 평생 직장을 보장하는 나라에서 일하면서, 특별한 권위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서구적 사회를 비난한다는 것이 정당한가 말이다.

[...] 이처럼 민주적으로 길든 노르웨이 사람들이 노동자 본위의 노동법도, 노조도, 감시기관도 없는 제3세계에서도 과연 민주주의를 실천할까? 그들의 민주주의는 특수한 사회환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다른 환경에서는 상당히 변질되는 일종의 외면적 관습이 아닐까? 아니면, 어떤 환경에서든 어떤 유혹을 받든 지키고야 마는 내면적 이상인가? (p.102)

말하자면 '거저 얻은 것'을 당연히 생각하면서 '갖지 못한 자'를 비난하는 꼴이 아닌가. 심지어 그들은, 자국에서는 민주적인 사회를 유지하고 있지만, 3세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하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제국주의시대의 침략을 자행하고 있다.

이어, 그는 짧은 시간이나마 노르웨이에 살면서 지켜본 노르웨이의 민주적이고 평등, 평화로운 사회를 계속 의심하기도 한다.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폭력성이 노르웨이에서도 발견되는 것이 놀라운 걸까? 스카우트(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같은 훈육조직의 우익적 정서, TV에서도 버젓이 나오는 포르노의 폭력성, '일반 스포츠'처럼 행해지는 사냥이나 동물을 우리에 가두어 놓고 구경하는 동물원의 야만성 따위다. "악의 씨앗, 폭력에 반대한다"는 소제목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일상의 폭력성이 노르웨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저자의 개탄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떻게 이런 문장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유시민도, 김규항도, 홍세화도, 심지어 귀화한 박노자까지 모두 좌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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